살다보면 많은 우연과 마주치게 된다. 때마침 내려와 기다림의 지루함을 없애주는 엘리베이터의 배려와 같이 가까운 곳의 우연에서부터 알렉산더 플레밍과 처칠의 꼬여있는 우정과 같은 소설같이 멀리 떨어진 우연이 있고, 미립자들의 분해와 같은 자그마한 우연에서부터 우주의 시작이라는 빅뱅과 같은 커다란 우연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주변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과장을 약간 보태어 말한다면 이런 우연의 누적을 기록해 둔 것이 바로 우주와 인류의 역사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조차도 우연의 누적이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시작부터 아버지의 그 수많은 정자들 중에서도 그 특별한 하나가 선택되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다른 정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 '그' 특별한 정자가 되어서 내가 된 것이다. 또 생각해보면 난자의 두 핵 중에서 '그' 특별한 핵이 난자로 성장하고 다른 핵이 극체로 퇴화하였던 것도 어찌 보면 우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저 선대의 '그' 특별한 아무개들의 눈이 마주쳤던 우연, 그 인연들이 쭈욱 누적된 것이 나를 만들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이처럼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우연이라는 것이 지금의 세상에 미쳤던 영향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우연이라는 단어에 대한 경외감마져 불러일으킨다. 하긴,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들부터 우연의 또다른 이름인 확률로 설명된다는 것을 곰곰히 떠올려 보면 우연이 이처럼 거대한 힘을 가졌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련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세상에는 필연적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일들도 있다. 자그마한 향수병을 열면 그 속에는 콧속을 간지럽히는 향수의 분자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무도회는 완전히 우연의 지배 하에 일어나게 되지만, 결국에는 방 전체에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베이리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에디슨이 전구의 필라멘트로 대나무 숯을 생각해 내었던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지만, 에디슨의 우연이 없었더라도 인류의 밤에 대한 지배의 욕구는 전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어떻게든 밤을 지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일들은 우연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지만, 알고보면 필연이었던 경우도 더러 존재한다. 이렇게 우연과 필연이라는 상극은 '양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흔히들 운이 좋았다라는 말을 한다. 우연이 어쩌다가 자신의 편을 들어 준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우연이라는 탈을 쓴 필연은 아니었을까? 난 '지금의 내가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가끔씩 하곤 한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이렇게 살아가리라는 것이 필연에 의한 것이었다면 필연이 정해준 운명을 받아들여 필연에 부합하도록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것과, 내 생각대로 우연의 절묘한 조합에 불과했다면 그 인연이 나를 선택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세계가 우연이 만나고 만나서 이루어진 것이었든, 필연에 의해 계획된 일이었든 간에 어떻게든 몸부림치고 한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세계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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