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plitudes 2025 학회도 대충 끝났고 하니 백만년만의 블로그 업데이트. 생각외로 '양자중력'이 어떤 의미에서 열린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여 (예컨대 Carlo Rovelli의 scholarpedia 리뷰의 경우 '왜 사람들은 "중력자"란 개념을 이용해 계산하는데 거리낌이 없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본업이 양자와 고전 사이에 끼인 중력을 다루고 있으니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할 내용은 John Donoghue의 scholarpedia 리뷰에서 다루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테니 이 쪽을 보아도 좋고, 트위터에서 실컷 떠들었던 적도 있으니 이쪽을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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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 강의로는 이번 Amplitudes Summer School에서 Parra-Martinez의 강의가 있다. 그러면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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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quantised)'란 서술어는 어떤 현상이 이산적(discrete)으로 일어남을 지칭한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가설로 전자기파로부터 금속 내부의 자유전자에게 에너지가 전달되는 과정이 이산적임을 가정하여 광전효과를 설명하고자 했다. 현상의 '단위'를 현대물리에서는 '입자'라는 용어로 기술하며,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입자물리가 이론물리의 동의어로 취급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중력이란 이산적으로 전파되는 중력의 효과를 기술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때 중력 효과의 전파 단위를 중력의 양자, 혹은 중력자(graviton)라 부를 수 있다. (민코프스키 공간(Minkowski space)에서의) 중력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성질들이 알려져 있다.

 

1. 일반상대론을 양자화하여 얻는 중력자는 질량이 없는 스핀-2 입자이다.

2. 역으로, 질량이 없는 스핀-2 입자의 존재를 가정할 경우 (편의상 중력자라고 부르자) 다음과 같은 성질을 만족해야만 한다.

  • 중력자의 원천(source)으로 기능할 수 있는 물리량은 에너지-운동량 텐서(stress-energy tensor) 뿐이며 중력자에 대응되는 장 방정식을 정리하면 일반상대론을 얻는다(Weinberg 1965).]
  • 모든 입자는 중력자에 대해 동일하게 반응하며, 이를 등가원리(equivalence principle)의 일종으로 이해할 수 있다(Weinberg 1964).
  • 중력자는 유일하다. 혹은, 여러 종류(flavour)의 중력자가 존재한다면 각 중력자는 자신만의 우주로 갈라져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Boulanger--Damour--Gualtieri--Henneaux 2000, Benincasa--Cachazo 2007).

 

이런 연구들로부터 낮은 에너지/먼 거리(low energy/long distance)에서의 중력을 기술하는 이론은 일반상대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면 Arkani-Hamed의 강의를 참조하는 것도 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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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접근법의 연장선상에서 일반상대론을 유효장론(effective field theory)으로 취급하여 고전적인 중력에 대한 중력의 양자역학적인 효과에 의한 보정을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종류의 계산들을 유효장론으로서의 일반상대론 (general relativity as an effective field theory) 혹은 적외 양자중력(infrared quantum gravity)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중력자가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두 원천 사이의 중력적 상호작용을 매개하며 그 과정은 일반상대론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어떤 양자중력 이론에서 출발하더라도 먼 거리에서는 일반상대론의 예측을 재생산(reproduce)해야 하므로 궁극적인 양자중력 이론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 예측들은 유효하다. 이 방향의 계산에 대한 몇가지 예시로는 다음 연구가 있다.

 

 

위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수많은 연구가 있긴 한데 리뷰를 쓰는 것이 목표가 아니므로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관심이 있다면 처음 언급한 Donoghue의 scholarpedia 항목이나 인용해둔 inspire 링크를 통해 다른 연구들이 뭐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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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양자중력이 현대물리의 열린 문제라고 하는 것일까? 비밀(?)은 재규격화(renormalisation)에 있다.

 

현재 자연을 가장 작은 길이 단위(smallest length scale)에서 기술함이 실험적으로 확인된 이론은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이며, 대부분의 양자장론 계산에서는 발산하는 무한대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이 무한대를 규제(regulate)하는 재규격화라는 절차를 필요로 한다. 무한대로는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값에서 무한한 값을 빼서 유한한 예측을 하는 방법은 무한히 많은 방법이 있기 때문에 이론으로부터 유효한 예측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무한한 값에서 유한한 값을 얻어내는 절차 또한 규정해야 한다. 이를 재규격화 조건(renormalisation scheme)이라 한다. 재규격화시 이미 이론에 존재하고 있는 작용자(operator)에 붙은 계수의 값만을 조정하는 것으로 재규격화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경우를 두고 재규격화 가능(renormalisable)하다고 하며, 끝없이 새로운 작용자를 도입해야 하는 경우를 두고 재규격화 불가능(nonrenormalisable)하다고 한다.

 

재규격화 가능한 이론은 몇가지 값만 고정해주면 추가적인 정보 없이 무한히 많은 예측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예측성(predictability)을 가진 물리 이론으로 평가되며, 재규격화 불가능한 이론은 예측을 위해서는 무한히 많은 정보(모든 작용자들의 계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유효이론(effective theory)으로 취급되지 않는 이상) 예측성이 없다고 평가된다. 일반상대론은 재규격화 불가능한 이론의 대표적인 예시이고, 이런 의미에서 현대물리의 열린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완전한 이론으로서의 양자중력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문제로 다음을 들 수 있다.

 

  • 블랙홀 정보 문제(black hole information paradox). 정확히는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에 의해 증발하는 블랙홀에 엔트로피의 형태로 저장된 정보가 어떻게 증발하면서 발생하는 복사선으로 이동하는가의 문제.]
  • 블랙홀의 미시상태(black hole microstate). 다양한 준고전적(semiclassical)인 방법으로 계산된 블랙홀의 엔트로피가 정확히 어떤 자유도의 다른 상태를 세는지에 대한 이해. 이 문제에 대해 제한적으로나마 정량적인 답변을 제공하는데 성공하여 유명한 이론으로 끈이론이 있다(Strominger--Vafa 1996).
  • 중력 특이점(gravitational singularity) 부근에서의 물리학. 빅뱅 초기나 블랙홀의 특이점이 여기에 대응된다.

 

이보다 더 다양한 문제가 완전한 양자중력 이론을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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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말한다면 중력과 양자효과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 중 지금의 제한적(?)인 양자중력에 대한 이해만 가지고도 풀 수 있는 문제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직전에 언급한 문제들이 양자역학 도입 이전 자성의 설명에 대응된다면 이번에 언급하는 문제들은 완전한 양자역학이 없더라도 고전역학에 몇가지 가정을 덧대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소 원자 스펙트럼에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범주에 속하는 문제의 하나로 초플랑크 산란(transplanckian/super-planckian scattering; 't Hooft 1987) 문제를 들 수 있고, 큰 틀에서 입자물리 계산의 범주로 취급되는 후민코프스키(post-Minkowskian; PM) 계산이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일반적인 유효장론 접근에서는 고려하는 현상에 수반되는 에너지 수준이 그 유효장론이 유효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계(보통 자외 차단(UV cutoff)이라고 한다)를 넘어서면 그 유효장론으로는 유효한 예측을 하지 못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소박한(naive) 관점을 일반상대론에 적용하게 되면 일반상대론의 그 어떤 예측도 믿을 수 없다는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일반상대론의 자외 차단은 뉴턴 상수 $G$로 결정되는 플랑크 질량(Planck mass; $m_{\text{Pl}}$)이며 입자물리 수준에서는 황당할 정도로 큰 에너지($1.2209 \times 10^{19}$ GeV)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질량의 단위로는 상당히 작은 질량(22 ug = $2.2 \times 10^{-5}$ g)이며 천체물리에서 사용하는 질량의 단위인 태양질량(solar mass)으로 셀 경우 황당할 적오로 작기($1.1 \times 10^{-38} M_{\odot}$) 때문이다. 실제로는 일반상대론이 실험과 가장 자주 비교되는 영역이 천체물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소박한 예측에는 다소 문제가 있음이 명확해진다.

 

초플랑크 산란은 이런 표면적인 모순을 해소해준다. 에너지 수준이 $E$인 현상을 뉴턴상수 $G = (m_{\text{Pl}})^{-2}$로 대표되는 일반상대론으로 기술할 경우, 일반적인 유효장론이라면 섭동이론(perturbation theory)의 전개변수(expansion parameter)로 $GE^2 = (E / m_{\text{Pl}})^2$를 이용하며, 이 조합이 1보다 매우 작아야 유효장론을 이용한 섭동이론적 기술이 유효하다. 일반상대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천체물리에서는 이 조합이 $(M_{\odot} / m_{\text{Pl}})^2 \sim 10^{76}$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놓친 부분이 있음이 명백해진다.

 

여기서 빠진 정보는 '상호작용하는 두 물체 사이의 거리'다. 고전역학에서 일반상대론을 섭동이론(후민코프스키 전개)으로 다룰 때 전개변수는 $GE/R$의 꼴을 가지며, 앞서 언급한 전개변수를 두 물체 사이의 각운동량으로 나눈 값으로 취급할 수 있다($GE/R \sim GE^2 / J$). 첫 번째 전개변수 $GE^2 \gg 1$가 매우 크고 두 번째 전개변수 $GE/R \ll 1$이 매우 작은 경우(이때 $R$을 충격매개변수(impact parameter)로 취급한다)에는 준고전적인 근사가 잘 작동하고 두 전개변수가 매우 큰 경우에는 블랙홀 생성이 최종 상태를 결정하므로(고리 가설hoop conjecture; Thorne 1972) 양자중력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 못해도 플랑크 질량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에서도 믿을 수 있는 예측을 내리는 것이 가능한 셈이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의 초플랑크 산란에 대한 활발한 연구는 이 깨달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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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생각보다 길어졌지만 현재 양자중력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문제들에 대한 정리 및 인상비평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순서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고 떠오른 대로 적어보았다.

 

  • $\mathcal{N} = 8$ 초중력의 유한성(재규격화 가능성). 처음으로 초대칭을 위배하지 않는 상쇄항(counterterm)은 7-loop 수준에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UCLA 그룹에서 보다 높은 loop에서의 integrand를 적을 방법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NSF 펀딩이 잘려서 당분간 계산 클러스터를 못 돌린다고 하니 다음 loop 차수인 6-loop 계산은 한동안 기다려야 할 듯.
  • 적외 양자중력 문제로 4 중력자 산란진폭(scattering amplitude)의 산란행렬 부트스트랩(S-matrix bootstrap)을 통한 일반상대론의 고미분보정항(higher-derivative corrections)의 결정. 양수제약(positivity constraint)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접근에서 아직 열린 문제는 중력자의 질량이 없기 때문에 만델스탐 변수(Mandelstam variable) 평면에서 원점까지 닿는 분지점(branch cut)을 비섭동적으로 다루는 것과 흔히 $t$-채널 극($t$-channel pole)이라고 부르는 기여분을 적외 차단(infrared cutoff) 없이 다루는 것.
  • 고리양자중력(loop quantum gravity) 접근에서는 아직 민코프스키 공간(Minkowski space)을 이론의 진공(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으로서 구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알고 있다. 참고할 수 있는 Ashtekar의 리뷰.
  • 끈이론 방면의 접근에서는 블랙홀 정보 문제에 대한 얽힘섬(entanglement island) 풀이. 다만 몇달 전 AdS/CFT를 주 연구분야로 하는 사람에게 들은 인상비평으로는 이 방향의 연구가 (약간의 외교적 수사를 더한다면) 뜸해졌다고.

 

여기 적어둔 문제 외에도 다른 열린 문제들이 많지만 완전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니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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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Jul04] 글을 처음 올릴 때 빼먹은 몇가지가 있어서 추가.

 

  • 최신 연구 경향에서 끈이론 방면의 접근 중 늪지대(swampland)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은게 생각나서 추가. 늪지대란 (적외IR에서만 유효한) 유효장론 중 양자중력이 포함된 자외 완성(UV completion)이 존재하지 않는 이론들의 공간을 말한다. 보통은 자외 완성에 중력이 존재하는 끈이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효장론들의 공간을 살펴보고 공통점을 찾은 뒤 '이 공통점이 없다면 중력이 포함된 자외 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와 같은 가설을 세우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편.
  • 양자중력의 열린 문제들을 정리한 좀 더 완전한 목록을 찾는다면 Nordita에서 진행된 양자중력 워크샵의 리포트를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 휴가에서 돌아온 기념으로 브라우저 탭을 정리하다가 Rocci와 Van Riet의 양자중력 물리학사 리뷰를 발견했다. 역사적 맥락은 이쪽이 훨씬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으므로 관심이 있다면 (+ 충분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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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Jul04B] Nordita 워크샵 리포트를 보다가 중력자에 대해 한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서 추가 코멘트.]

 

간혹 '중력파가 존재한다고 해서 중력자가 존재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예시로 수면파나 공기중의 소리의 양자화가 말이 안 되는 것을 비유로 드는 경우가 있는데, 중력을 통계역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entropic gravity)가 아니라면 이 비유는 틀렸다. 수면파나 공기중의 소리는 유한한 온도를 갖는 매질에서의 파동이기 때문에 양자화의 당위성이 부족하지만, 중력파는 (해당 이론에 진공(vacuum)이 존재한다면) 절대영도 진공에서의 파동을 양자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으며, 절대영도 진공이라면 파동과 같이 집합적 운동(collective motion)에 대응되는 자유도라도 양자화해야 한다. 당장 고체나 초유체(superfluid)에서의 포논(phonon)이 그 예시. 양자중력 이론에서 중력자가 근본 자유도(fundamental degrees of freedom)일 필요는 없지만, 적외(IR)에서 중력자가 등장할 수 없다면 아무래도 우리 우주를 기술하는 이론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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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Oct18] 레퍼런스 표기를 편집하다가 각주 정보가 전부 날아갔다(...). 하필이면 백업을 안한 포스트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다니... 20개가 넘는 각주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할 방도가 없으므로 각주를 전부 삭제하기로 결정하였다. 각주에 있었던 꽤 중요한 정보도 있긴 할텐데 (예컨대 Tom Banks의 $\mathcal{N}=8$에 대한 논문이라던가) 각주에 둔 내용은 본문에 두지 않을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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