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요일에 토플을 치고 학교에 출근했더니 휴식이 부족해서인지 지난 목요일에 완전히 뻗어버렸습니다. 역시 페이스 조절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중. 목요일에 뻗고 금요일은 기어가 모두 헛도는 상황이 발생해서 주말동안은 완전휴식 모드로 보냈네요. 결국 그래서 월요병이... 으흑



2.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를 읽었습니다.[각주:1] 재미있긴 한데 가끔씩 눌려버리는 우울우울 스위치가 신경쓰이는게 유쾌하기만 하지는 않네요. 뭐, 우울한 추억에[각주:2] 잠깐씩 잠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화자로 설정된 히키가야 하치만의 성격이 마음에 듭니다. 특히 문제에 답이 없다면 문제를 이그러뜨려서라도 답을 도출해낸다는 접근법이요. 두 평행선이 만날 수 없다면 공간을 구겨버려 만나게 만든다고 해야할까요. 하야마 하야토나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하치만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이런 결단력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학교 미술 실습시간에 사서 쓰던 그 큰 4B 잠자리 지우개마냥, 자기 자신을 갉아먹어 가면서 없을 길을 만들어내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기는 괴롭겠죠.

약간 신경쓰이는 건 유키노시타 하루노란 캐릭터. 표면상으로는 히키가야 하치만과는 정 반대의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만, 제 감상은 하치만의 거울상으로 설정되었다에 가깝습니다. 항상 사람들이 둘러싸게 만들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호감을 심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는 반대칭적이지만, 그녀가 동생인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성장을[각주:3] 위해 취하는 방법들은 지극히 하치만스럽달까요. 문제를 계속 던져줘서 스스로 극복하도록 만드는 방식은 유키노의 방식이긴 하지만, 자신을 악역의 자리에 위치시키고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방법은 하치만의 방법이죠.

하루노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자세히 알 방법이 없긴 하지만, 전 크게 다음의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동생 유키노의 성장, 특히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색지대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 둘째는 순전히 추측입니다만, 하치만의 정답. 혹은, 하치만이 찾는 진실된 것. 간혹 배겨나오는 차가운 면모라던가, 하치만에게 기대하는 부분이라던가, 하치만에게 그렇게 시시했냐고 묻는다던가와 같은 내용들을 절충해보면 그녀 또한 같은 답을 찾으려 했고, 다소 다른 답에 도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랄까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찾아내지 못한 답을 찾으려는 하치만에게 관심이 닿는 것이고, 자신이 찾아내지 못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정답을 찾아내기를 원하는 것이겠죠.



2.1.

각 캐릭터들에 대한 인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부 쓰자니 귀찮아지기도 하고 말로 잘 표현이 안 되기도 해서 빠뜨리는 부분이 많긴 합니다만.

히키가야 하치만은 '어떻게든 답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정답인지, 정답에서 살짝 비껴난 오답인지, 아니면 잘못된 가정에서의 정답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답을 만들어냅니다. 앞서 말했듯, 유키노와 하야토가 하치만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겠죠. 그리고 그 잘못된 가정 중 하나인 '나 하나 좀 망가지면 어때?'가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소부고교 봉사부 삼인방 중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가장 많이 망가져 있던 사람이었지만[각주:4] 점차 망가진 부분이 수복되어 가는 것을 잇시키 이로하나 오리모토 카오리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죠.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반대로 내부적으로 망가진 사람입니다. 살짝 언급했듯, 갈등 상황에서는 짓밟은다 혹은 짓밟힌다 두 선택지 말고 다른 선택지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죠. 그녀 또한 그것이 정답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정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쫓습니다.

유이가하마 유이는 (봉사부 안에서 따질 때) 필요한 것은 모두 가진, 완성된 캐릭터입니다. 물 마냥 자신의 빛깔 없이 주변의 빛깔을 그대로 투영하던, 거울 마냥 자기 자신이 없이 주변의 분위기만 반영하던 사람이 자신의 빛깔을 내비칠 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의지를 분위기에 반영할 줄 알게 되었죠. 그렇기에 점차 찢어져 가는 봉사부를 어떻게든 붙들어 맬 수 있었던 것일거구요.

하야마 하야토는 어릴 적부터 유키노시타 자매와 어울려 왔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덜 성숙했던 어린 시절의 하야토는 주변 인간관계가 으스러지고 박살나는 광경을 많이 봐 왔겠지요. 유키노의 '발렌타인 다음날은 분위기가 냉랭했다'는 말을 생각해보면요. 그렇기 때문에 하야토는 '살얼음판이 깨지지 않도록 균형잡는 법'을 연마해 온 사람입니다.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는데 특화되었죠. 그래서 하야토가 하치만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이겠죠. 하치만은 '살얼음판을 전부 부숴버리고 헤엄쳐 강을 건너는 사람'이니까요. 더불어 자신을 '남의 기대에 얽매여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여기는 것을 볼 때 '남의 기대따윈 무시하는 사람'인 하치만의 자유로움(?)을 동경할 겁니다. 말도 안 돼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그 기대에 대답한다는 점에서 완벽하지만, 어느 기대 하나도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불완전하달까요.



2.2.

앞으로의 결말에 대해서 예측해보는 것은 무의미하지만,[각주:5] 일단 생각난 김에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전 일단 무척 게으른 사람입니다. 특히나 선택에 대해서요. 보통은 이런 게으름을 우유부단이라고 부르죠. 그래서 지금의 봉사부 관계가 무너져 내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잇시키 이로하가 되겠네요. 하치만이 '진실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면서, 봉사부의 관계가 조각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선택지. 제게 닥친 현실이었다면 이 길, 하야토의 답을 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완결성이란 측면에서는 최악의 선택이죠. 우선 12권에서 13권 안에 결말이 난다면 하치만이 이 답을 '진실된 것'이라고 납득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하루노가 계속 물어 올 것입니다. 의미는 살짝 다르지만, 중세 정물화의 해골과 같달까요? 시야 한 구석에서, 끝없이 물어 올 겁니다. 네가 찾던 정답이, 그 정답이었냐고.

결국 선택지는 유이와 유키노, 둘 중 하나로 남습니다. 선택하지 않는다는 결말은 화자가 납득하지 못할 테니까요. 이 경우에도 전 현실이었다면 택했을 답과 이야기의 완결성을 위해 택했을 답이 좀 다른데, 전 현실이었다면 유이와 하치만이 이어지는 결말 쪽을 선호했을 겁니다. 유이와 같이 상냥한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을 보지 못한달까요. 하지만 유키노의 빈 구멍은 완전히 메워지지 않은 채 결말이 날 가능성이 높고, '소부고교 봉사부 삼인방의 성장'이라는 이야기의 틀에는 무언가 안 어울립니다. 굳이 이야기의 완결성까지 충족하는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자면 하야토와 하루노까지 말려들어 유키노의 빈 구석을 채우는 것이겠지만, 하야토가 자신이 애써 이룬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드네요. 에비나 히나와 토베 카케루로부터 시작된 균열이 전체 판을 뒤흔들어버린다면 모르겠지만요.[각주:6][각주:7]

봉사부 밖에서 발생한 사건의 여파가 봉사부까지 휘두르는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할 경우, 전 유키노 쪽이 이야기의 진행 상 좀 더 어울린다고 봅니다. 마태복음도 아니고 가득한 사람에게 더 준다는 것은 영 아니란 생각이라서요. 이 쪽 방향일 경우 어떻게 풀어나갈 지는 감이 안 잡히지만, 하루노가 말려드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이네요. 쓰고 보니까 유이 쪽 엔딩에 제시한 시나리오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문제



2.3.

이렇게 말을 주저리주저리 써놓긴 했지만 전 어지간해서는 악평을 안 내리는 인간인지라 어떤 결론을 내든 전 납득하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악평을 내리는 경우는 작품이 운이 나쁘게도(?) 아주 낮은 확률로 눌리는 이상한 곳에서 배배 꼬인 버튼을 누를 때인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바타>입니다. 어째서인지 이상적인 무언가를 그리려고 하기만 하면(특히 그 구호가 '자연으로 돌아가자'같은 느낌일 경우) 도저히 곱게 봐 주지를 못해요.[각주:8] '진실, 혹은 정답이란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에 대해 잠정적으로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려서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가 버린 길의 끝을 가보려는 화자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화요일입니다. 일주일 한번 신나게 살아보자구요.

  1. 11권까지 [본문으로]
  2. 이걸 추억이라 불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은 없지만요. [본문으로]
  3. 일단 유키노는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에서 성장이 필요하니 계속 갈등 상황을 만들어낸다는게 제 하루노에 대한 판단입니다. 유키노의 갈등해결방법은 두 가지 뿐이죠. 갈등을 정면에서 찍어누르거나, 아니면 갈등에 정면으로 굴복하거나. [본문으로]
  4. 그러니까 히라츠카 시즈카가 봉사부에 강제로 입부시켰겠지요 [본문으로]
  5. 언제까지나 이건 '제가 읽고 제 마음 속에 제멋대로 구성한 이야기'의 해설이니까요. 뭐야, 지극히 하치만스러운 생각이잖아? [본문으로]
  6. 다만 이 경우에도 유키노가 얻게 될 마지막 조각이 충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마음에 걸립니다. 과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이상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요. [본문으로]
  7. 뭐, 제4의 인물인 하야토의 성장(이 경우엔 '남의 기대를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하는 능력'이 되겠지요)까지 고려한다면 영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8. 이상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경우가 아니라, 이상적인 무언가가 이미 주어져 있고 거기에 걸어들어가는 흐름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본문으로]

'Daily liv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Asian Winter School  (0) 2017.01.19
YITP School  (0) 2016.03.06
파인만이 말하는 연습문제를 푸는 이유  (0) 2015.03.22
수식 렌더링 실패 관련  (0) 2015.03.04
근황. 짤막하게  (0) 2015.02.24
Posted by 덱스터

블로그 이미지
A theorist takes on the world
덱스터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