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세시간을 날려먹고서야 오실로스코프를 가로 단위를 2.5us로 잡고 single로 측정한 뒤에 가로폭을 확대하여 가로 단위를 500ns로 확대(A)한 후 오실로스코프를 새로운 값을 측정할 수 있도록 준비(B)했을 때와 2.5us에서 single로 측정한 후 오실로스코프를 새로운 값을 측정할 수 있도록 준비(B)한 뒤 가로 단위를 500ns로 확대(A)했을 때 오실로스코프가 측정한 값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붕괴된 멘탈을 재조립하면서 증가한 엔트로피를 배출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신나게 뻘글을 배출해 보자.




얼마 전 개미 다섯 마리의 다리 수를 세는 초등학교 문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5*6이라고 적은 답안을 오답 처리했기 때문이었는데, 6*5라고 써야 한다는 해설을 들은 사람들은 대체로 멘붕에 빠지거나 어떻게든 내신 등수를 내야겠기에 점수차이를 만드려고 오답처리를 한 것이라며 교사를 욕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는 곱셈을 가르칠 때 "무엇의 몇 묶음"의 방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순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두 숫자의 곱은 순서를 바꾸어도 같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이 오답만큼 황당한 것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물리학(...)의 영역으로 가면 온갖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두 숫자의 곱 또한 얼마든지 괴상해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있다. 비전공자가 사용한 100가지 경우 중 제대로 사용한 경우는 한가지가 될까 말까 한 불확정성 원리는 정확히는 '한 계(혹은 물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정보의 한계'를 말한다.


그렇다면 '정보'란 무엇일까? 섀넌은 정보의 양을 '가능한 모든 경우에서 얼마나 좁은 경우의 수로 좁힐 수 있는가'를 이용해 정의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을 찾을 때 '그 사람은 태어났다'라는 명제는 전혀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지만, '그 사람은 90년에 태어났다'라는 명제는 어느 정도 정보로서의 가치를 가지며, '그 사람은 90년 4월에 태어났다'라는 명제는 더 많은 정보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는 식이다. 물리학에서도 비슷한 식으로 '한 계의 정보'를 정의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서는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cs를 '물리학'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올바른 번역은 '형이하학'이다) 한 물체의 위치만 주어지면 미래에 그 물체가 어떻게 운동할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가정했다. 한 계의 정보로 '위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한 물체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그보다는 더 많은 정보가 있어야 했다. 갈릴레이는 '운동' 또한 위치만큼 중요하다(물리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값들은 변하지 않는 것-불변량-과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보존량-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갈릴레이는 운동이 보존량이라는 것을 사고실험으로 증명했다)는 것을 논증했고, 뉴턴은 운동을 '한 계의 정보'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뉴턴의 유산인 고전역학에 따른다면 '한 계의 정보'는 '위치에 대한 정보'와 '운동에 대한 정보'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각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오용되고 있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로 돌아가 보자. 파울리는 한 편지에서 불확정성 원리를 "'운동을 보는 눈'만 뜨거나 '위치를 보는 눈'만 뜰 수는 있지만 둘 다 뜰 수는 없다니!"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위치에 대한 정보와 물체의 운동에 대한 정보 모두를 얻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렇게 한 계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더라도 양자역학에 따르면 충분히 완벽하게 그 계의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확정성 원리의 '확정'은 "미래는 확정지어져 있다"의 확정이 아니라 "상자에 들은 공의 갯수를 확정지을수 없다"의 확정이다. 하이젠베르크는 "xx의 값은 XX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와 같은 약 파는 소리(..)를 한적은 없다.


그렇다면 앞선 초등학교 수학 문제와 불확정성 원리의 관계는 무엇일까? 불확정성 원리의 수학적인 표현은 순서를 바꾸어 곱한 두 숫자의 차이로 나타난다. q를 위치를 나타내는 수로, p를 운동을 나타내는 수로 쓴다면 'qp-pq=i'가 불확정성 원리의 수학적 표현이다. 보다 쉽게 말한다면, 물리학에서는 q에 p를 곱하는 것과 p에 q를 곱하는 것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생각하기 쉬운 예시는 수1에서 많은 골치를 썩였을 행렬이 있다. 2X3 행렬에 3X2 행렬을 곱하면 3X2 행렬에 2X3 행렬을 곱한 값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곱하는 순서가 중요한 숫자들은 불우하게 생을 마감한 수학자 아벨의 이름을 따 비아벨(nonabelian) 수라고 부른다.


한편 물리학자들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A를 먼저 측정한 후 B를 측정하는 것과 B를 먼저 측정한 후 A를 측정하는 것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이 이 값들을 일종의 함수로 이해하고, 이 값들의 곱을 고등학교 수학에서부터 다루는 함수의 합성-f(g(x))는 x를 함수 g에 넣어 얻은 값을 다시 함수 f에 넣어 얻는 값을 말한다-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위의 예시를 그대로 따온다면 pq를 'q를 잰 뒤 p를 잰다'로, qp를 'p를 잰 뒤 q를 잰다'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qp-pq=i'란 식을 'p를 잰 뒤 q를 잰 것과 q를 잰 뒤 p를 잰 것의 차이는 i이다'라고 이해한다.


이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데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슈퍼맨이 되려면 쫄쫄이 위에 팬티를 입어야지 팬티 위에 쫄쫄이를 입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최근에 본 강철남-Man of Steel-에서는 붉은 삼각팬티가 사라지긴 했지만). 이렇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상태로 오게 되었는가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로의존성이라고 부른다. 물리학에서는 강자성체의 자기이력곡선(말만 어렵지 철이 자석되는 것을 말한다)이 대표적인 예이긴 한데, 너무 물리 이야기만 했으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보다 극명하고 피부에 와 닿는 경로의존성이라면 단연 대통령제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서구에서는 꽤나 잘 정착된 이 제도는 몇몇 국가에서는 전제군주정의 현대적 변형으로 정착되어 있는데, 제도가 동일한데 결과가 다르다면 그 국가가 거쳐 온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 외의 적절한 설명은 없어 보인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고 현재를 너머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하고 있는 여러분, 애인의 과거가 신경쓰인다면 그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 사랑하고 있는 현재의 애인도 있는 것임을 이해하려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결론이 무언가 이상한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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