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적인 초고. 더 다듬을 예정. 비평 환영합니다.

마지막 두 문단을 좀 더 매끄럽게 이을 필요가 있을 듯.




약간은 내 동생에게 미안한 이야기인데, 내 동생은 나보다 말을 늦게 배웠다고 한다. 아기들은 말을 할 때 바로 "colou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ly"와 같은 문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아기들은 옹알이를 하는 법을, 그 다음에는 간단한 단어를 외치는 법을, 이후에는 단어 두어 개를 조합해 생각을 전달하는 법을 배운 뒤에라야 완전한 문장을 말하고 추상적인 생각을 하는 법을 익힌다. 내 동생이 나보다 늦게 말을 익힌 이유는 간단하다. 철없는 어린 시절의 나는 두어 단어씩 겨우 겨우 말을 하던 동생에게 제대로 된 말을 하라고 윽박지르곤 했는데, 그래서 내 동생은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기도 전에 위축되곤 했던 것이다. 부모님께 나도 그렇게 문장 하나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지적을 들은 뒤에야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입만 살아 자주 대들어 골치를 썩이는 동생에게 고마울 뿐이다.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중등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까지 퍼진 모양이다.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이야 성인으로 취급받으니 어떤 말을 하든지 학교 총장이 나서서 그 입을 막으려 하지는 않지만(물론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중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모양이다. 내 정보통이 유난히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유난히 많은 중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 하나로 교장실에 불려간다는 소식이 조금씩 들려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중고등학교의 교장들은 왜 학생들이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가장 간편한 설명은 정권에서 교육부를 통해 그 학생들의 입을 막으라고 공문을 내렸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권이 그렇게 찌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발짝 물러나면 각 학교의 교장들이 공문이 내려오기도 전에 미리 몸을 사린다는 설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 정권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학습된) 자발적인 복종은 절대군주의 통치방식이다. 사람들이 절대군주제 하의 신민과 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면 이것은 현 정권의 소통 방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위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음모론이다. 아마 학생들이 백지 전지에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장학사가 되기 위한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하는 교장의 이익관계가 개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의 대입 성적에 따라 평가받는다. 이것은 교장도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피말리는 수능성적 경쟁구도에서는 전지 하나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느라 풀지 않은 연습문제 하나가 수능 당일의 틀린 문제 하나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장 입장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수능 문제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에 학생이 딴짓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할 충분한 이익관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돌아와서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자.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방면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왜 학생들이 선동당했다며 입을 막고 싶어하는 것일까? 물론 사람들이 드는 08년의 여름에 대한 지적이 옳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광우병이 공기중으로도 전파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정설인 냥 퍼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물어보자. 사람들이 옳지 않은 말을 한다고 그 입을 막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미국 대학의 토론식 수업과 자유롭게 질문이 오가는 분위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누군가가 헛소리를 하고 있어도 사람들이 그 헛소리를 차분하게 들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중학교 시절 장학사가 들어오는 수업에서는 교사들이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미리 질문할 거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입을 맞췄던 기억이 난다.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에게는 침묵할 권리만 주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교사들이 진도 나가야 한다는 이유로 학생의 질문이 헛소리라는 판단이 드는 순간부터 그 질문을 묵살한다. 반대로 말한다면 학생에게 주어진 질문할 권리는 어디까지나 "난 이것까지 안다"는 자랑을 할 권리이다.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해악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그러니까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입을 열지도 못하도록 윽박지르는 분위기를 꼽겠다.[각주:1] 중등교육 시절 억압적인 분위기를 겪었던 사람들이 관성적으로 그 억압적인 분위기를 다시 만들어내고 있고, 때문에 내가 동생에게 했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사람들이 틀렸다고 자신만의 생각을 전개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유독 사람에 대한 신뢰가 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들이 충분한 용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올바른 진실을 직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누군가가 유언비어라고 생각되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들 그 사람의 입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유언비어가 왜 진실이 아닌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아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유언비어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논리적 추론 능력을 갖게 된다: 유언비어에 시달려 본 사람일수록 유언비어에 면역을 갖추는 것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금방 유언비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주장에 더 자주 노출되어 이런 훈련을 겪을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며, 이러한 훈련 없이는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나는 진실 앞에 깨져보는 경험,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던 진실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내용에 대한 맹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진실에 파묻힌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명동 거리의 십자가들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앞서 충분한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올바른 진실을 직시할 수 있다고 한 이유는 한 사람이 자신이 믿고 있었던 진실을 부수는 데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한 사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 믿음을 부수는 것은 원래의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갈아 엎는 것을 의미하며, 용기 없이는 이를 이룰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누군가가 헛소리를 하거든 그 헛소리를 들어주고 잘못된 점만 바로잡아 줄 여유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가진 믿음이 참된 진실이고 다른 사람들이 거짓된 진실을 떠들고 있다면, 내가 유언비어를 두려워할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p.s.

대자보는 일종의 웅변이다: 한 사람의 청중에 대한 웅변은 전지에 그대로 박제되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없더라도 지속적으로 그 사람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대자보이다. 대자보를 찢어내는 것은 웅변에 입막음으로 맞서는 행위이다. 웅변에는 웅변으로 맞서는 것이 옳다. 대자보를 붙일 자유가 있으면, 그에 반박하는 대자보를 붙일 자유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 대자보를 찢어내는 자유란 존재할 수 없다.

  1. 창조경제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대야만 한다면 같은 이유를 댈 것이다. 창의성이란 결국 다르게 말한다면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말한다. 제기해야 할 올바른 질문이 아니면 질문을 해서는 안되는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좋은 질문을 해보는 훈련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결국 그 누구도 창조경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되는 창의성을 다듬을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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