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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30 라이트 형제와 비행안정성
Robert C. Nelson의 Flight Stability and Automatic Control, 2nd Ed에서 가져옵니다. (p.35-39)

본문은 출처의 재정리이니 자세한 것은 본문을 확인하세요. 본문은 비행안정성(Flight stability -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라이트 형제와 관련된 부분만 잘라내었습니다.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는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과 미국의 옥타브 샤누트(Octave Chanute), 사뮤엘 피어퐁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 이하 세 사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토 릴리엔탈은 2000번이 넘는 글라이더 비행을 통해 굽었거나 캠버(camber-날개가 위쪽으로 굽어있는 것을 말합니다)가 있는 날개의 성질을 연구하였다. 릴리엔탈이 사용했던 글라이더 모델들은 정적안정성(static stability - 날아가던 자세에서 흐트러졌을 때 원 자세로 돌아오려는 성질)을 가졌으나 조종능력이 극히 떨어졌으며, 조종은 글라이더에 탑승한 자신의 신체를 이동시켜 무게중심을 바꾸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 단점은 후에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나는데, 글라이더가 실속(stall-날개를 너무 들어서 양력발생능력을 상실한 상태)하여 50피트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릴리엔탈은 사고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이튿날 사망했다.

 

옥타브 샤누트는 릴리엔탈의 글라이더 디자인을 개선하여 자신만의 설계를 내놓았다. 그의 디자인은 두 쌍 혹은 그 이상의 날개를 가졌으며 조종간으로 평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수직날개를 달아 조타가 가능하여 단일 날개만 가졌던 릴리엔탈의 디자인에서 진일보하였다. 샤누트는 이후 키티 호크(Kitty Hawk)를 방문하여 라이트 형제에게 비법을 전수하기도 하였다.

 

스미소니안 재단(Smithsonian Institution)의 서기였던 사뮤엘 피어퐁트 랭글리는 비행역학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던 라이트 형제에게 당대의 선구자들의 작업을 보내주었다. 물론 이는 라이트 형제에게 매우 도움이 되었다. 랭글리는 1890년대 즈음 비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비행 관련 데이터를 모으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이 자료를 공부하고 자신만의 실험을 한 끝에 그는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heavier-than-air flight)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었으며 동력이 있는 무인글라이더를 완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모형은 1896년 5월 6일 1분 반 동안 3/4 마일을 비행하였으며 이로서 기계를 이용한 비행(mechanical flight)의 상용화 가능성이 열렸다. 모형의 성공에 관심을 가진 육군성(War Dpartment)은 랭글리에게 접근했고 그는 의회로부터 5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그의 조수 찰스 맨리(Charles Manley)와 독자적인 디자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타이드워터(Tidewater) 근처의 포토막(Potomac) 강에서 배에 고정된 사출기를 통해 시도한 2회의 (1903년 9월 7일과 12월 8일) 비행은 실패로 끝났다. 사출기를 사용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였으며 이후 20년 뒤 수정된 그의 비행기는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쳤다.

 

1903년 12월 17일[각주:1] 북 캐롤라이나 키티 호크에서 라이트 형제들은 그들의 역사적인 비행을 실현하였다. 첫 비행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가 탑승하였고 12초간 125피트를 날았다. 번갈아가며 비행기를 조종한 형제는 그날 세번 더 비행하였으며 마지막 비행은 59초간 시속 20마일의 맞바람을 맞으며 852피트의 거리를 이동하였다. 항공기의 착륙용 활주부(skid)가 지면에 닿는 순간 비행이 멈추는 방식으로 착륙하였으며, 형제는 예전의 글라이더보다 반응성이 뛰어난 동력비행기를 조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라이트 형제는 동시대의 실험 데이터들을 검토한 후 성공적인 비행을 위해서는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풍동(wind-tunnel)과 비행(flight-test)을 이용한 실험에 착수하였다. 형제는 작은 풍동을 설계하고 제작하여 굽은 날개(airfoil)의[각주:2] 공역학적 특성을 알아내기 위해 수천개의 모델을 실험하였으며, 수천개의 글라이더 비행 실험을 통해 비행기를 발전시켰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형제는 동력비행(powered flight)에 성공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충분하지 못한 조종성이라고 확신하였으며, 글라이더의 조종성을 개선하는데 대부분의 노력을 들였다.

 

라이트 형제의 접근은 급진적이었다.당대 비행 선구자들의 설계는 근본적으로 안정적인(inherently stable) 비행기와 글라이더를 제작하는데 주력하였으며, 이런 항공기들은 대기가 조금만 불안정해도 위험했다. 하지만 정적안정성이 없는(statically unstable) 대신 조종성을 개선한 라이트 형제의 항공기는 안정성이 없어 조종이 까다로웠지만 형제는 글라이더 실험을 통해 불안정한 항공기를 어떻게 제어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라이트 형제의 주요 업적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공역학 실험을 위해 풍동과 평형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제작하였으며 이로부터 체계적인 날개의 공역학적 특징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2. 적절한 조종성을 가진 완전한 비행 조종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3. 저중량 기관과 효율적인 프로펠러를 설계했다.

4. 동력비행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동력대무게(strength-to-weight ratio)를 가진 비행기를 설계하였다.

 


 

세줄 정리

 

1. 실험을 중시하였다.

2. 안정적이지만 조종성이 떨어지는 디자인을 제끼고 조종성이 좋지만 불안정한 디자인으로 갈아탔다. 불안정한건 조종으로 땜빵.

3. 얻을 수 있는 자료란 자료는 전부 검토하였다.

 

스터디 하면서 '한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려면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된다'는 주제에 대해 라이트 형제를 사례로 들고 오셨던 분이 있었는데 확인해보니까 정 반대네요...

  1. 랭글리의 두 번째 비행과 일주일 조금 넘게 차이나는 것을 알 수 있죠. 랭글리가 비행기를 좀 더 단단한 재질을 써서 사출기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었더라면 역사는 다른 이름을 기억했을 것이란 말을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본문으로]
  2. 정식 명칭은 에어포일입니다만 그렇게 깊게 들어가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해 날개로 통일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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