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예담


사실은 별로 땡기지는 않았던 책이지만 알라딘 2013 양장노트에 눈이 멀어(...) 질러버린 책.[각주:1] 그나마 있던 책들 중 가장 관심사가 일치해 보이는 것으로 골랐는데 웬걸, 생각보다 괜찮다. 그리고 나는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들께 인생은 마라톤이니 롱런하려면 스프린트 하듯 뛰어나가지 말라는 조언을 듣기는 했지만, 급할 때는 뛰어야지 뭐 별 수 있겠는가.[각주:2]


part1에서는 각국의 공부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을, part2에서는 동양과 서양에서 공부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동양에서는 못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언급이 상당히 재미있다. 『생각의 지도』이래로[각주:3] 동서양의 사고방식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그 근거들은 흥미롭다. 서양에서는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이 나뉘어 있다고 보는 반면, 동양에서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


또한 동양에서 도입된 과거제도라는 혁신적인 관리선출방식이 공부의 목표를 출세로 바꾸었고, 따라서 지식의 확장이라는 희열에서 싹튼 자연과학이 발전할 수 없었다는 지적은[각주:4] 예상하기는 했지만 무심코 넘어갈 수만은 없는 부분. 결국 공부의 목표는 직접적으로 사회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이다. 때문에 자연과학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자연과학은 인간에서 한 발 떨어진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나라의 국가 권력상에서 사회과학의 지위를 넘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이번 계절학기때 김월회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던, 문과 출신 총리는 많지만 이과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과기부 장관뿐이라는 사실도 생각나고. 결론: 대한민국에서 과학자로 성공하려면 인문학자와 인문학으로 배틀떠도 이길 정도로 내공을 갖추어야 합니다.뭐라고요?


그리고 다시 서양과 동양에서 노력에 대한 관념의 차이로 돌아와 보면 이 차이가 어떻게 보면 조금은 모순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직업관은 영단어 vocation에 잘 드러난다. voca로 시작하는 수많은 단어책들을 보셨을 여러분들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vocation이란 '신의 부름'을 의미한다.[각주:5] 따라서 개개인마다 신께서 마련해 주신 직업이 존재하므로 나에게 맞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며, 이 직업을 찾아 나서는 것이 사람이 할 일이 된다. 노력해야 할 것이 따로 있으니 아닌 것 같으면 바로 패를 접으라는 것. 포커든 고스톱이든 돈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전략 '딸때 많이 따고 잃을때 적게 잃자'를 인생에 적용한 것이다.[각주:6]


한편 동양에서는 과거라는 제도가 분명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노력하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 + 주변에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러면 결론은 노력하면 된다는 것.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정서에는 그릇에 물을 채워 달을 담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되읊으며 초월적 존재에 기원하는 이야기들이 서양에는 없다시피 하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온다.[각주:7] 더군다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지른 한 마디 탄식, '신이시여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맞나?)는 일단 신께서 힘을 실어 주신 다음에 그 힘을 거두어 갈 때나 할 수 있는 말 아니던가. 아르크 지방의 잔 이야기도 사실은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고.[각주:8]


물론 여기까지는 책의 내용을 조금 더 넓혀 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이 흔적이 종교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따로 정해져 있으니 안 되면 다른 것을 찾아 떠나라는 말은 결국 '사람은 모두 맞는 무언가가 따로 있다'는 초월적 존재의 흔적이 지워진 믿음으로 남은 모양인데, 이를 종교관에 적용해보면 '신께서 날 만나주지 않는다면 결국 난 신과 만날 운명이 아닌 것이다' 또는 '신께서 날 만나주시지 않으니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각주:9] 유럽에서 바닥을 기는 종교인 비율을 이 영향으로 설명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한편 '노력하면 된다'라는 믿음의 우리나라에서 절대자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신을 만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야'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과물이 길거리의 넘쳐나는 피켓으로 구현된다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절대자가 있었던 세계관은 결국 그 세계관 때문에 절대자를 버리게 되었고, 절대자가 없었던 세계관은 그 세계관으로 절대자를 맹목적으로 쫓게 되었다는 것이. 호프스테더가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에서 지성의 근원으로 지목한 그 이상한 고리(strange loop)의 발현이 되겠다.


다만 문제는 이 가설을 검증해볼 방법이 있냐는 것. 아무래도 과학에 좀 깊이 발 담근 사람이다 보니 이 문제가 가장 먼저 들어온다.난 어차피 검증할 방법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론물리 분야로 흘러들어갈 것 같으니 미리부터 검증불가능한 이론에 익숙해지는 셈 치고 막 던져볼까?


p.s. 수업 대비로 읽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인데 나는 왜 이런 것을 읽고 있는가...

  1.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앨리스로 골랐다. [본문으로]
  2. 그런데 이건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에서 정확하게 깐 그 내용이다(...). 그러니까 알라딘 님들 저 『시간의 향기』 저자사인본 한부만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굽신굽신 [본문으로]
  3. 생각해보니 군대에서 번역본 읽고 원서를 사두었는데 원서는 집안 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렇게 나의 책 수집벽이 드러나는구나...(먼산) [본문으로]
  4. 과거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부터 대강 비슷한 가설을 세워두었는데, 책의 다음 장에서 바로 그 결론이 등장했다.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중간까지 읽은 내용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세웠는데 그 결론을 확인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5. voc는 '부르다'라는 의미를 갖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어원이다. vocabulary, provoke, evoke 등의 영단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본문으로]
  6. 신영복 선생님의 『고스톱 ABC』와 같은 책에서도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씀이 와 닿는 순간. [본문으로]
  7. 그런데 이건 한국만의 특성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 [본문으로]
  8. 주기도문이나 사도행전처럼 초월적 존재에게 기대려는 시도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설화의 범주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서양 희곡이든 설화든 누군가가 운명에게 힘을 받아 그것만 믿고 설치다가 운명이 그 힘을 다시 가져가며 몰락하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 기사도 문학은 약간 다른 구성이긴 한데, 걔네들은 어차피 '용맹스러움을 과시하며 절대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이런 부류가 대부분 아니던가. [본문으로]
  9. 내가 교회를 안 다니지는 않지만 불가지론자에 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께서 절 버리셨군요'라는 일종의 트라우마인 셈. 한동안 바뀔 일은 없을 듯 싶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원문

-재미있는 글이라서 퍼왔습니다 -_-;;

흠... 원래 과학에서 말하는 신은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쪽에 가깝죠.(물론 여기서 신은 만물에 대해 중립적인 신을 의미) 그리고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에 차이가 없다면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논리선별법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쪽이고요.

종교적인 의미의 신은 과학적인 증명을 때려 치는게 옳다고 보기는 합니다. 언제까지나 '무엇이 과학인가'의 문제인데, 믿음은 과학과는 좀 거리가 있어서요. 그런데 과학적으로 논증할 때 기준을 누구의 것으로 삼느냐가 문제네요. 포퍼의 논의가 어느 정도 우수하기는 하지만 역시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각주:1] 쿤은 '정상과학'이라는 지속적인 체계가 존재한다고 한 것에서만 의의를 찾을 수 있어서요. 그래도 포퍼의 기준을 들이대면 '가설에 반증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가 과학적인 명제의 기준입니다. 종교에서 그런 부분을 찾기는 힘들죠. 사람이 살아도 신의 뜻, 죽어도 신의 뜻, 이런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다고 무신론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인간이란게 세계를 인식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논리에 부분 부분 구멍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런게 비이성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사실 비이성의 바다 위에 이성이라는 쪽배 하나 떠 있는 것이 인간의 심리일테고요. 글 자체는 유신론자의 논리가 비과학적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1. 포퍼대로라면 반증 하나에도 이론이 뒤집혀야 하는데 실제로는 실험을 의심하는 사람이 더 많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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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The opposite of the religious fanatic is not the fanatical atheist but the gentle cynic who cares not whether there is a god or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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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의 반대는 광적인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에 무심한 회의주의자이다.

-Eric Hoffer, The True Believer

아 이 구절 마음에 드네요

전 확실히 광신도의 반대편에 서 있는듯...-_-;;;;

저 책은 한번 기회가 되면 구해봐야겠습니다. 읽을지는 미지수이지만...쩝;;


덧. 저기서 맹신하는 자 모두 광신도에 들어간다는 거. '종교적 대중' 글이 생각나는군요.
Posted by 덱스터
한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종교 중 하나는 기독교입니다. 개신교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용어 통일을 위해 이 글에서는 기독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왜 욕을 먹는지 모릅니다(전 좀 특이한 케이스...)[각주:1]. 욕을 먹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몇 가지를 나열해 보면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1. 공격적을 넘어 배타적인 전도

2. 세속화

세속화는 이 땅의 많은 종교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불교도 아예 없다고는 말 할 수 없고, 천주교도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각주:2] 그러면 유난히 기독교가 많이 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 첫 번째 이유가 주된 근거라고 봅니다. 한번 밉보이면 착한 일을 하더라도 의심하게 되고, 나쁜 일을 하면 밉보이던 것만 강화됩니다. MB가 월급 전액을 기부했다고 했을 때 잘한 일이긴 하지만 꿍꿍이가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많았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 물론 사회 약자를 보호하겠다면서 복지 예산을 줄여나간 것은 잘못한 점이긴 하지만요.

전 이런 부분이 기독교인들이 근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믿음'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입니다.[각주: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조금은 애매하다 싶으니 쉬운성경을 보겠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자청하시는 분들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당신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당신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믿는다고 할 때, 저 위에서 말하는 '바라는 것들'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대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전 그 나라가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열심히 일한다면 굶어 죽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자기가 노력한다면 자기가 가진 모든 올곧은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정의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를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대표되는 현재 대한민국의 전도 행태에 반대합니다. 예수님이 있음을 아는 것, 그리고 그분이 원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들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In response to:
다시 불어야 할 영성의 향기, 한국 개신교의 '오래된 미래' - 조현, <울림>  [Hendrix 님의 글]
  1. 친구들은 절 기독교인 취급 안 합니다. 왜지? ㅠ_ㅠ [본문으로]
  2. 그렇다고 이게 문제가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세속화는 분명히 배척해야 할 현상입니다. [본문으로]
  3. 단테 『신곡』에서도 인용된 유명한 구절입니다. 천국편 24곡.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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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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