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할 수 있는 것[http://heterosis.tistory.com/365]

잉여의 과학자들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것인가? 그들은 이 역겨운 자본주의의 수렁이 그들의 위치를 점점더 구덩이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모르는 듯 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오히려 그 자본주의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전통 속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저질러야만 하는 그 수렁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몬산토로, 거대제약회사로, 것도 아니면 벤쳐로, 또는 퀀트가 되어 맨하탄의 금융중심지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이들이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데 있어서는 이다지도 무력하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멍청하다.


우울한 현실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고에너지 물리학은 현재는 되면 해 볼까 하는 수준의 선택지로 남아있다. 먼저는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전 세계를 통틀어 100명 내외라는 현실적인 이유이고, 근본적으로는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연금술사』의 어떤 할아버지처럼, 사람들에게는 이루어지기 두려운 꿈이 있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 우울한 현실이 절망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잉여의 과학자들이 있다는 것은 세계가 과학자들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옛적 영국의 쫓겨난 농노들처럼 기계들을 부수러 다니겠는가. 부서진 기계들의 잔해를 짓밟고 다시 땅을 경작하기를 원했던 그들은 결국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세계는 이미 변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하게 하고 싶다면 세계가 과학을 요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 물결은 너무나도 거대하게만 느껴진다. 세상이 다시 과학을 요구하도록 하기에는 과학이 너무 많이 커 버렸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과학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타락인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선택했다. 순수한 자기만의 세계에서 세상을 향해 내려가기를 선택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순혈주의 아닐까.

물론 나도 과학에 대한 수요가 넘쳐나는 세상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세상에 발 붙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틈만 나면 아름다운 이론을 박살내려 안달이 난 현실이 탐탁지 않기는 하지만, 무엇이든 하려면 현실이라는 땅에 기반을 다져야만 한다. 조금은 무리한 예지만 패러데이는 제본 견습생이었고, 아인슈타인은 특허청 공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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