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분류하자면 사민주의와 아나키스트 사이에 서 있는 나한테 레포트에 쓸 자료를 찾아보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찾게 되었다.

칼 폴라니 비판을 위하여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아마도 이 글에 대한 비판인 것 같은데(시장을 의심하는 당신 떠나라, 폴라니의 세계로 - 한겨레 21, 2009-03-26), 뭐 전반적으로 매우 틀렸다고 할 만한 거리는 없지만 결론에서 에러다.

폴라니 특집을 기반으로 볼 때 폴라니가 말하는 것은 '도덕경제' 정도 되는 것 같다. 사회 참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맞다면(내가 보기엔 '사회 참여의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다' 정도인 것 같지만) 사람의 도덕성을 기반으로 경제체제를 꾸려나가자는 소리가 되니까 말이다. 도덕경제는 이미 탐욕이 주 동력이 되는 경제체제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상태에서 대안이 되기엔 너무 나이브하다.

기업은 이윤창출이 제 1 목표인 집단이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해도 이윤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예전에 인도에서 백내장 치료용 렌즈(?) 비슷한 것을 생산하는 병원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 사례가 하나의 좋은 예가 되겠다. 기업은 이윤이 없으면 망한다. 사회는 그렇게 착하지 않다.) 그리고 연구소에서 말한 것처럼 사회적 기업도 일반기업으로 변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윤을 만들기는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제 1 가치로 하는 사회적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일반기업 사이에 끼어서는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생각해 보라. 어떻게든 상대방을 죽여야겠다고 식칼을 들고 돌아버린 녀석과 상당히 오랜 기간 검술을 익혀왔지만 상대방에 상처 하나 주지 않고 제압해야 하는 검객이 붙을 경우 장기적으로는 돌아버린 녀석이 검객을 죽일 가능성이 크다.)

뭐 여기까지는 동의하겠는데, 결론이 왜 '프롤레타리아 독재 만세' 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나오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데, 생산수단을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전유하자는 말 자체가 그 소리 아니겠는가?

[...]

이러한 모순의 유일한 해결책은 생산수단을 소수의 자본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전유하는 것, 공동체의 사용가치 생산을 위해 생산수단을 전유하는 것이다.

[...]

일단 내가 사용하는 독재의 의미를 간단히 '정당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두자.(왕권 뭐 그런 것 등등으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그런 무의미한 말장난은 때려치자) 그렇다면 내가 보여야 할 것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유를 억압하는가가 되겠다. 해답은 사유재산권의 거부에 있다.

자유는 기본적으로 '약자가 강자에게 사냥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각주:1] 그런데 약자가 어떻게 사냥당하는가? 여기서 사냥당한다는 의미는 '약자의 사유재산이 강자에 의해 강탈당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결국 자유는 '자신의 소유물이 강탈당하는 것을 막을 권리'인 것이다. 만약 자유에 대한 이 이론이 옳다면, 자유는 근본적으로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사유재산권이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인 자유가 존재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각주:2]

따라서 사유물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결국 '브루주아의 이윤을 위한 부속품'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국가의 이윤을 위한 부속품'으로 대체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불어 자유까지 잃었으니, 대체가 아니라 몰락이라고 이름붙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혁명이건 뭐건 다 잘 살아보자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근간에는 자유가 놓여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맑스주의자들이 다시 자유에 눈을 돌리기 전까지, 공산주의는 이 땅에 다시 설 일이 없을 것이다.
  1. J. S. Mill의 『자유론』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내용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 둔다. "[...]To prevent the weaker members of the community from being preyed upon by innumerable vultures,[...]" 사실 이 부분은 국가의 사회계약론에 기초한 것이라 엄밀하게 말하자면 틀린 내용이지만 이 정도의 엄밀하지 못함은 용인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2. 사유재산권 없이도 자유를 논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를 가르치는데 사유재산권처럼 유용한 수단은 없다고 본다. 적절한 예는 아닐 지 모르지만 노예에게 자유가 없는 것은 그에게 사유물을 가질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권의 인정이 자본주의라면, 우리는 절대 자본주의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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